어느 날, 유튜브를 보다가 모 변호사의 채널을 보게 되었다. 대부분 납득할 수 있는 부분과 일반인은 몰랐던 교통법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주는 채널이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댓글을 보고 채널 구독을 취소했었다. 그것은 횡단보도에 대한 이야기였다. 짧게 줄이자면, ‘보행신호가 켜지면 횡단보도가 그려지고, 보행정지 신호가 켜지면 횡단보도가 사라지는 게 맞다.’ 그리고 ‘자동차 주행 신호이고 보행금지 신호일 때 도로에 뛰어들어 차에 치이면 운전자는 책임이 없다.’와 같은 주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로에서는 강자와 약자가 정해져 있다. 추돌, 충돌할 때 상대적으로 피해를 많이 입는 측은 보통 약자이다. 사람에게 이륜차는 강자이며, 이륜차에게 사륜차는 강자이다. 언제나 강자는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 이것이 도로교통법이 사륜차보다 이륜차를, 이륜차 보다 보행자를 보호해야 함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모든 횡단보도 도달 전에 마름모 표시가 되어 있다고 알고 있다. 이것은 ‘곧 이제 횡단보도가 나온다.’라는 의미이며 모든 운전자가 횡단보도에 도달함을 미리 알게 해주는 것이다.
내가 처음 운전면허를 따던 90년대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횡단보도가 보이면 서행을 하라고 되어 있었다. 이것은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에서도, 신호가 있지만 보행신호가 켜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동일하다. 만에 하나,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보호하는 것이 운전자가 지켜야 하는 의무였다. 이 모든 것이 ‘안전운전’이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차를 타고 목적지에 거의 도달할 즈음, 골목길에서 항상 아버지는 경적을 울리며 방향 전환을 하셨었다. 당시 골목은 지금처럼 아스팔트로 포장된 구간도 적었고 대부분 사람, 자전거, 가끔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정도였다. 때문에 운전자 입장에서 언제 어떻게 보행자나 자전거, 특히 아이들과 마주치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아이들은 언제나 뛰어다녔고 지금처럼 아이들에게 안전교육을 시키는 경우도 없었다. 이 경적을 울리는 행위는 보행자를 위함이기도 했지만 마주오는 자동차에게 미리 주지 시키는 역할도 컸다. ‘안전운전’의 차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약자와 강자 이전에 법규를 근거로, 신호를 지키지 않으면 그것을 어긴 사람에 대한 보호는 불필요하다는 주장마저 지지를 받는 모양이다. 이 주장이 정말 변호사에게서 나온 것일까?
내가 기자라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그 변호사의 채널을 뒤지거나 인터뷰를 요청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 기자는 거의 없고 ‘기레기’들이 기자 행세를 하고 있다. 나는 물론 일반인이라 그럴 여력도 정성도 갖고 있지 않다. 그 변호사가 뭐라고 했든, 그 ‘지지자’들이 그런 주장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본다.
자동차 전용 도로라면 보행자를 예상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횡단보도가 있는 구간이라면 최소한의 주의는 해야 한다. 법이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까? 아니, 내 생각엔 ‘최소한 이건 지켜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가 맞다. 아무리 내가 억울한 상황이어도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이는 경우는 피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럴려면 ‘신호가 켜졌으니 막 달려도 된다.’가 아니라 ‘신호는 켜졌으나 혹시 모르니 3미터 정도는 속도를 줄여 지나가자.’가 되어야 한다.
법은 피해자를 줄이기 위해 만든 약속이라고 본다. 그것이 피해를 강요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