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경성크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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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경성크리처’

괴생명체가 나오는 것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 처음 넷플릭스에 공개되고 이슈가 되었을 때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악명높은 731 부대가 한국과는 상관없다며 역사 왜곡이라는 공격을 했다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실제 역사적 사실과 상상을 섞어 재창조하는 것은 문학적으로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게 아닌가? 그것이 왜곡이라고 욕을 먹어야 한다면, 교과서를 이용해 사실과 다른 역사를 사실인양 가르치고 외교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역사 왜곡의 수준을 넘어도 한참 넘은게 아닐까?

경성크리처는 일본이 한국땅에서 인체실험을 하며 생기는 일련의 사건과 시대적 배경이 어우러진 가상의 역사 드라마이다. 일부 드라마의 각본이 허술하고 실망스럽다는 비판도 있지만 가볍게 주먹을 불끈 쥐며 볼만한 드라마가 아닌가 싶다.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박서준이 맡은 장태상의 대사였다. 어떻게 보면 생각없이 돈만 밝히며 사는 양아치 같지만 사실 그런 이미지로 살아가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 아닐까? 장태상 자신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식솔들을 위해 자기 한 사람은 이도 저도 아닌, 돈만 아는 사람이 되어도 괜찮다는 사람.

몇 장면에서 시대를 관통하는 주옥같은 대사를 발췌해 본다.

7화, 일본군과 대치하며 허망함을 느끼며 주저앉은 채옥에게 태상은 이렇게 말한다.

난 말이오
되도록 오래 살아남을 셈이거든
살아서
저들한테 계속 까끌까끌하게
생각이 나게 만들 거고
불편하게 만들 거고
우리한테 한 짓을
계속 기억나게 만들 거요
절대로
소리 없이 죽어 주지는 않을 거요

제대로 사과도, 배상도 하지 않고 역사 왜곡을 일삼는 지금의 일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9화, 당분간 금옥당을 닫겠다고 하며 하는 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는 그 근본부터 싹을 잘라야 하는 법
옹성병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내가 다 봤어
거기서 일어나는 일은 절대 사람한테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일세
그래 놓고 저들은 세상 앞에 시치미를 떼겠지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고
그런 일은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명자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데도 보게
어디 하나 살인 사건을 다룬 신문이 있는가?
이게 그들의 방식일세
덮어 버리고
없던 일로 만들어 버리고
자네 말대로 아닌 건 아닌 거고 틀린 건 틀린 거야
지금 당장 나랑 상관없어 보인다고 모른 척 눈 감아 버리면
언젠가는 그 일이 우리 모두한테 일어나 버릴 걸세

항상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지 않고 외면하며 그들의 고통은 그들 스스로 감내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며 지나가지만 같은 일을 자신이 겪게 되면 그때 부터 그 고통을 억울해하며 절규하게 된다. 그 전에 반복되던, 같은 고통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봐 온 군중 속의 한 사람이었으면서…

세월호 사건도 남의 일이라 여기며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에 지금까지도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는 것 처럼, 일제 치하에서 자행된 일본인과 친일파의 만행 또한 남일 보듯하면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극단으로 치닫는 후진국적 정치 행태 또한 왜곡하고 침묵하는 언론 종사자들 때문에 해결되지 않는게 아닌가 싶다. 여기에서 ‘그들’에 현 정권을 넣어도 앞뒤가 딱 맞는게 아닐까 싶다.

9화, 태상 측근들의 지난 과오를 들춰내며 자신에게 오라는 마에다의 요구를 거절하며 하는 태상의 말

그래
당신 말이 맞을 수도 있지
헌데…
그거 아시오?
그 사람들 모두
이런 세상이 아니었으면
겪지 않았을 일들이오
이런 세상이 아니었으면
감옥으로 끌려가
동료를 배신하라고 피멍이 들도록 맞지도 않았을 거고
불에 지져지거나
손톱, 발톱이 뽑히지도 않았을 거고
그 고문을 견디지 못해
동료의 이름을 불면서 평생을
죄책감으로 고통받지도 않았을 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죽기 살기로 다들 버티고 있는 건
치욕스럽더라도
구차하더라도 살아남아야 하니까!
우리가 살아남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가 당한 일을 기억해 주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함부로 쓰레기라고 말하지 말아요
저 사람들 중에
당신한테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소

어쩌면 이 부분이 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가치관이 아닌가 싶다. 타인을 이해하면 미워하지 않게 되고, 나아가 어떤 과오를 했든 그 상황을 공감하며 받아들이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배신과 거짓을 알면서도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그 사랑이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

친일파를 구분하는 기준도 사실 이와 같은 맥락이다. 당시 대부분 일제치하에서 그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했기에 갖다 붙이려면 모든 국민이 친일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을 감안해 적극성을 따져 친일파인지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이런 기준으로 전문가들의 판단하에 나온 것이 ‘친일인명사전‘이다.

경성크리처는 단순히 괴물이 나오는, 일제치하의 고통을 고발하는 그런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만이 아닌, 결국 2024년의 대한민국 국민이 지금의 상황을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드라마일 것이다. 극단으로 치닫는 양 끝단의 정치 구도와 끝없이 강탈을 꿈꾸는 주변국의 침략에 굽힘없이 대응해야하는 대한민국.

까끌까끌하게, 지치지 않고, 우리끼리는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힘이 되어주어 2024년의 대한민국이 처한 이 어려움을 잘 해결해 나가길 바라며 드라마 ‘경성크리처’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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