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신 의원의 국회 본회의 신상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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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 의원의 국회 본회의 신상발언

김홍신 의원이 얼마 전 사임을 했다.
별로 관심은 없지만 평소 목에 깁스를 하고 다니는 더러운 인간들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였던 그가 사임을 하며 국회 본회의에서 낭독한 글이라고 한다.

인연이란 참으로 아름답고 소중합니다. 어찌 맺었건 저와 인연을 맺게 된 모든 분들께 먼저 고마운 말씀을 드립니다.

소설을 쓰고 시민운동을 하다가 정치를 시작할 때만 해도 저는 정직한 정치와 새로운 정치,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으로 법대로 정석대로 정치를 해보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향기나는 정치를 하고 싶었습니다. 아름다운 국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많은 실험과 노력을 했습니다. 국민정치를 실현하려고 애썼습니다. 국민의 대표와 당의 당원으로 충돌할 때 저에게는 당보다 국민이 먼저였습니다. 당을 존중하기 보다는 국민을 존중했습니다. 그러나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현실정치와 괴리에서 오는 자괴감이 컸습니다.

여전히 국민들은 정치를 싫어하고 국회의원은 욕을 먹습니다. 8년 동안 몸담은 정치권을 떠나는 지금 반성해봅니다.

우리는 혹시 권력을 남용하고 그것을 정치라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혹시 진실을 외면하고 그것을 권력이라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혹시 국민을 무시하고 그것을 현실이라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혹시 부정에 동조하고 그것을 선택이라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혹시 타인을 해치고서 그것을 개혁이라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혹시 양심을 그르치고 그것을 화해라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혹시 당략에 따르면서 그것을 협력이라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혹시 법리를 무시하고 그것을 자유라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혹시 평화를 깨뜨리고 그것을 희망이라 하지 않았는가.

이제는 떠나야 할 때입니다. 국민이 제게 주신 의무를 얼추 다했기 때문입니다. 16대 국회의 임기는 내년 5월29일까지 6개월 정도 남았지만, 이번 정기국회를 끝으로 사실상 종결될 듯합니다. 나머지 기간은 대체로 17대 총선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돌아보았습니다. 국회의원으로 이 자리에 선 지 만 8년입니다. ‘국회’라는 말은 ‘국민대표자회의’의 준말입니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자랑스러웠습니다. 국민대표 중 한사람인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자랑의 무게만큼이나 부담 또한 컸습니다. 잘해야겠다는, 부끄럽지 않아야겠다는 부담이었습니다. 그 자랑과 부담 때문에 저는 의정활동에 진력했습니다.

의정활동 평가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15대부터였습니다. 15대 첫해인 1996년 중앙일보의 의정활동 전체순위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1위를 했습니다. 그 상이 또한 영광이자 부담이었습니다.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키는 것은 항상 전보다 두 배 이상의 노력을 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8년 동안 해를 거듭할수록 의정활동에 쏟는 정성은 2배씩 커졌습니다.

1999년 문화일보가 15대 국회 4년 전체를 평가했습니다. 2000년엔 한국유권자운동연합이 15대 국회 4년 전체를 평가했습니다. 두 곳 모두에서 1등으로 뽑혔습니다. 그리고 지난 11월 한국유권자운동연합은 작년 의정활동 평가를 했습니다. 저는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국회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그랬듯이 떠나는 지금도 저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랑은 제 것이 아니라 바로 국민의 것입니다.

헌정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언론과 시민단체로부터 분에 넘치는 평가를 받았지만 잘못하고 부족한 점은 또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럼에도 국민들께서 어루만져 허물을 덮어주셨기에 반듯할 수 있었습니다. 상호평가에서 의원 여러분이 저를 가장 많이 선택해주셨고 시민단체와 언론과 네티즌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과 후원회원들의 격려와 채찍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 자리에 서서 국회의원으로 맨 처음 한 일은 바로 선서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국회법 제24조에 의한 선서문의 한 구절을 가능하면 잊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이 문구는 그 때 이후 제 활동의 기준이었습니다. 이 기준이 때론 당론과 마찰을 일으켰습니다. 상임위에서 내쫓겨 의원회관에서 크리스마스 농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당원권 8개월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한참이나 아꼈고 사랑했던 한나라당 이름으로 내년 총선에 나갈 수 없게 됐습니다. 저는 또한 이것이 자랑입니다. 8년 전 이 자리에서 했던 선서를 지킨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을 결코 미워하지 않습니다. 조직의 논리가 있고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찌할 수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한나라당 동지들에 대해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제게 너무나 많은 가르침과 의미있는 정치와 능력을 발휘할 공간과 충분한 발언기회와 소신을 펼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떠나는 마당에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나라당의 발전을 바라며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고 보다 알찬 정책으로 국민에게 사랑받는 멋진 정당이 되기를 빌겠습니다. 지금도 당사에 걸려있는「강한나라 편한세상 만들겠습니다」는 제가 만든 문구입니다. 정말 그 표현 그대로 한나라당이 대한민국의 중추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하렵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지금보다 좀 더 넉넉했으면 좋겠습니다.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지난 대선에서 졌음을 뼈저리게 반성해야 합니다. 대선 1년 전인 2001년 말 상임위에서 내쫓겨 농성하면서 발표한 성명서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당론을 관철시키기 위해 국회의원의 양심을 꺾는 행위는 청산해야 할 구시대의 모습이다.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이 이 정도의 모습밖에 보여줄 수 없다는 사실에 실망스럽기만 하다. 이런 구태에 젖은 모습으로는 집권하기 힘들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지난 대선에서 졌습니다. 저는 최근 한나라당의 정국대처가 이와 다르지 않음에 가슴이 시립니다. 국민이 거대정당 한나라당에 실망한다는 것은 곧 국민의 가슴이 시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은 그 이름처럼 큰 정당이기도 하지만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할 준엄한 역사적 책무을 지고 있습니다. 보여주십시오. 제가 몸 담았던 정당이 제가 떠난 뒤에 국민으로부터 진짜 칭송받는 모습을 꼭 보고 싶습니다. 급하기만 하고 여유가 없으면 전투에서 이길 수 있겠지만 전쟁에선 이길 수 없습니다. 강자의 진정한 논리는 관용입니다.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국민의 지지가 있었기에 저는 의정사상 많지 않은 전국구 재선의원을 했습니다. 국민이 자랑스러워하는 대표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법안 문구 하나라도 그냥 넘기지 않으려 했고, 국회 회의는 꼭 참석해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려 했습니다.

큰 절 올려 감사드립니다. 또한 사죄도 드립니다. 제가 미숙한 탓에 국민이 주신 임기를 다하지 못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음을 헤아려 주시고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혹여 다시 이 자리에 선다 해도 저는 지금까지 해온 그 모습 그대로 국민께 보여드리겠습니다.

혹여라도 저 때문에 속상하신 분들께선 뭐든지 잘해보고 싶고 소신을 지키려는 원칙주의자의 투정쯤으로 넉넉하게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16대 총선 때, 저는 법을 고스란히 지키는 선거운동, 떨어지더라도 규정을 지키는 정치, 원칙을 지킨 아름다운 패배자가 되더라도 정치적 규범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신뢰받는 시민단체에게 제 선거운동 전반을 감시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만 기회를 얻지 못 해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선배동료의원 여러분. 곧 17대 총선을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들이 만든 법을 우리가 지키지 못하면 더 이상 국민 신뢰를 얻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법으로 규정된 대로 선거비용과 선거운동을 하고 부당한 정치자금은 받지도 쓰지도 않으며 상대가 비난하더라도 상대를 비난하지 않으며 공약은 지킬 수 있는 것만 약속하며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선거를 해야만 합니다.

우리 정치현실 속에서 제 자신의 희생을 통해 무엇이 문제인지 알리고 싶습니다. 바른 정치가 무엇이고 국민이 원하는 만큼 왜 변해야 하며 정직하기 어려운 정치현실에서 정직하고 소신 지키는 고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저는 당분간 쉬면서 더 많은 걸 고뇌하려고 합니다. 영원한 숙제인 제 작은 영혼의 흔적을 찬찬히 뒤져보면서 붙박이 한국인으로 한바탕 흥과 은근한 해학과 역사의 소용돌이를 그려볼 심산이기도 합니다. 제가 글장이로 돌아가든 정치마당으로 나서건, 적어도 지금보다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참 많은 걸 가진 듯 합니다. 그래서 이제 인생을 정돈하듯 차분하게 버릴 것은 버리는 연습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리 좋은 인연만은 꼭 가슴에 새겨 제 영혼의 보물로 간직하고 싶습니다. 제 인생에 “향기의 보탬”이 되어주신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저를 살펴주신 모든 분들의 복된 나날과 강건함을 빌겠습니다.

2003.12.9 김 홍 신 드림

난 어렸을 때 중국의 정치인들과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너무 다르다는 생각을 했었다.
중국 때놈이라 하지만.. 그들의 의중은 쉽사리 알 수가 없다고 하던데.. 아마 그것은 눈 앞의 안위를 쫓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속이 빤히 보이는 데에다.. 그 보이는 속이 유치하기 짝이 없다. 가족들에게 부끄러워 자살하고 싶을 것 같은데, 심지 하나는 굳기도 하지.. 잘 사는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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