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기 시작한 드라마가 하나 있다.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커플이 파혼을 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인데, 기상청 내부의 일과 함께 로맨스와 기타 인간관계에 대해 재미있지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드라마이다.
지금까지 글을 남기고 싶었던 드라마가 몇 개 있었지만 특히 이번 3화는 관계에 있어 어떤 태도를 갖고 있어야 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내용이 있어 바로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었다.
하경(박민영분)은 젊은 나이에 팀장을 하게 된 과장이고 그 밑에 엄선임(이성욱분)이라고 오히려 선배인 부하 직원이 있다. 하경이 지각을 하게 되어 같이 근무해 온 통보관 한 명에게 문자로 회의를 엄선임이 주관하여 진행하게 해달라고 보냈지만 정작 엄선임은 모른척 하고 회의시간이 지나도록 모두 하경을 기다리게 방관한다. 결국 지각한 하경이 당황한 상태로 회의를 두서없이 진행하게 되고, 회의는 평소와 달리 어수선한 상태로 마치게 된다.
퇴근시간에 하경이 엄선임에게 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엄선임은 말한다. ‘그럼 지시부터 제대로 내렸어야지’
시청자는 처음 하경이 지각하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전해받은 엄선임이 회의를 진행하지 않아 모두에게 눈총을 받게 된 하경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나 또한 엄선임의 그런 태도가 얄밉고, 후배인 하경이 상사로 있어 아주 못되게 행동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엄선임 입장에서는 후배여도 상사이고, 그런 상사가 부하 직원인 자신을 부담스러워하며 지시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불편했던 것이다. 하경의 입장도 이해가 되고, 엄선임의 입장도 이해가 되는 순간.
이어 엄선임은 자리의 중압감을 제대로 알고, 업무지시도 떳떳하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단순한 입장차이를 넘어 부하직원이지만 선배로서의 조언을 해주는 엄선임의 됨됨이도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 또한 업무에 있어 맡은 직책의 책임감을 온전히 감내하며 근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엄선임은 원래 서울에서 가족과 살다 강원도로 발령을 받아 홀로 강원도 생활을 했던 것으로 나온다. 십여 년 만에 서울로 복귀해 아내와 딸과도 서먹한 사이가 된, 좀 못난 아빠이다. 강원도에 있는 동안 집에 연락도 잘 안해 통화를 해도 서로 할 말도 없는 먼 친척같은 사이.. 복귀하기 전에도 복귀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아 갑자기 집에 들어와 모두를 놀래켰다.
3화에서 엄선임이 화장실 문을 잠그지 않고 소변을 보고 있는데 딸이 문을 열고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아내는 딸에게 가 너무 오래 떨어져 있어 아빠가 잘 몰라서 그런다며, 너무 아빠한테 그러지 말라고 한다. 엄선임은 딸이 아기였을때 부터 떨어져 살아 훌쩍 커버린 딸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라 혼자 지내던 그대로 속옷 바람으로 돌아다니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
좀 더 살갑게 해달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딸은 대답한다. ‘나도 그래, 나도 몰라서 그렇다구’
아빠가 갑자기 큰 딸과 한 집에서 사는게 어색한 만큼, 딸도 십여 년 만에 집에 온 아빠와 산다는게 당황스러운 것임은 당연한 일인 듯 싶다. 만약 서로의 이런 마음을 계속 모르는 상태에서 ‘딸이 너무하네’, ‘아빠가 너무하네’ 이런 생각으로 계속 담을 쌓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사랑으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짧지않은 시간을 계속 서로 불편해하며 지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나마 엄마와 이야기를 하며 딸은 아빠가 몰라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엄마는 딸도 몰라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
대화, 소통은 이렇게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주고 받으며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주장만 전달하는 것은 대화와 소통이라고 할 수 없다. 상대방의 생각을 알지 못하면 그의 말과 행동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알아야 관계의 유지와 개선이 가능한 것.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는 소통을 잘하지 못하는 국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가까이는 가족끼리도 잘 모를 때가 있고, 회사에서도 회의나 토론이 잘 안되는 경우가 있는데다가 티비에서 보는 토론 프로도 각자의 분야에서 날고 긴다는 사람들이 나오겠지만 제대로 토론할 줄 아는 사람을 본 기억은 별로 없다. 특히 인터넷에서는 아주 난리도 아니다.
타인을 인정하는 것은 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다. 내가 존중받는 것은 타인도 존중받을 때 가능한 일이다. 내 생각과 의견이 존중받을만한 것이기 때문에 역시 타인의 생각과 의견도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한 것이 나름 이유가 있기 때문인 만큼, 타인의 생각도 마찬가지로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하고, 그렇게 해야만 소통을 할 수 있게 된다.
어릴 때는 대부분의 이야기가 선악의 극명한 대립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요즘은 완벽한 선인도, 완벽한 악인도 그려지지 않는다. 그만큼 타인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는 사회라는 반증인 것이다. 우린 지금 보다 더 존중받을 수 있고, 그것은 내가 다른 사람을 존중하면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